1. 열차와 꼬리 칸
윌포드의 열차는 빙하기를 대비하여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닙니다. 열차는 원래 관광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비용을 내고 열차 안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며 완전한 열차 내 자급자족을 통해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도록 기획된 것입니다. 꼬리 칸의 사람들은 애초에 열차에 탑승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었던 사람들로 빙하기가 발생하자 생존을 위해 열차의 후미에 꼬리 칸을 설치하고 열차에 무임승차 한 사람들입니다. 이 부분을 보며 가질 수 있는 질문은 '윌포드는 왜 꼬리 칸이 설치되는 것을 막지 않았나?’ 입니다. 애초에 우수한 무기와 병력을 보유했던 윌포드는 본인의 의지만 있었다면 반란의 소지가 될 수 있는 꼬리 칸을 떼어내고 사람들을 추방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윌포드는 꼬리 칸 사람들이 열차에 탑승하도록 허용하는데, 그가 꼬리 칸 사람들을 대했던 방식(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블록을 먹이고 정기적으로 학살을 자행하여 인구수를 조절했던 것)을 보면 그가 결코 선의로 꼬리 칸 사람 들과의 동행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나타나듯 열차는 18년 동안 외부의 도움 없이 운행을 하면서 각종 문제와 결함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노동력을 얻기 위해 꼬리 칸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윌포드는 열차의 운영을 위해서는 꼬리 칸 사람들과의 동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윌포드에 의해서 선택적으로 수용된 꼬리 칸 사람들과 윌포드의 18년 동안의 갈등은 인류의 역사 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에는 늘 편안함을 추구하는 힘을 가진 기득권(앞쪽 칸의 사람들)과 이들을 위해 노동력을 바쳐야만 했던 약자들(꼬리 칸 사람들)이 있었으며 인류는 늘 이 두 계급 간의 갈등으로 역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설국열차는 이 계급 간의 역사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작은 공간이었고, 현대 자본주의의 축소판이었습니다.
2. 길리엄 vs 커티스
18년 동안 길리엄은 꼬리 칸 사람들의 지도자로써 꼬리 칸의 반란을 이끌어 갑니다. 하지만 길리엄은 엔진 칸의 윌포드와 내통하고 있었고, 열차의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윌포드와 폭동과 학살을 계획하여 인구수를 조절합니다. 길리엄은 본인과 동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있음에도 앞 칸 사람들과의 공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커티스는 자신이 처한 열악한 환경에 분노하며 급진적인 혁명을 통해 열차의 질서를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이를 급진적으로 바꾸려는 진영과 온건하게 바꾸려는 진영 간의 갈등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혹 길리언을 권력과 내통한 악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길리엄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길리엄은 윌포드에게 폭동을 일으키는 대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 또한 꼬리 칸에서 단백질 블록을 먹으며 18년 동안 처참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열차 내에서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손실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정기적인 폭동으로 인해 꼬리 칸의 사람들이 희생되더라도 윌포드가 세운 열차의 질서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커티스도 과거 길리엄이 자신의 팔까지 잘라가며 희생정신을 보여 주었던 터라 그가 윌포드와 내통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떠한 비난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 길리엄은 작은 손실들을 감내하며 열차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려고 했던 것이며, 커티스는 급진적인 방법으로 평등한 세상을 이루고자 한 것입니다. 영화의 종반부까지는 커티스가 윌포드와 길리엄이 내통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상적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길리엄과 커티스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북극곰의 의미
열차의 폭발로 인해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되고 요나와 타미만이 열차에서 살아남아 밖으로 나옵니다. 열차의 밖에서 그들이 처음 목격한 것은 북극곰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북극곰이 갖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북극곰이 살아 있다는 것은 북극곰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하위 먹이사슬의 생태계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기차를 탈출한 요나와 타미도 생존을 위한 환경으로 나온 것이므로 기차를 탈출한 것은 옳은 결정입니다. 그들이 본 북극곰은 삶의 희망인 것입니다. 다른 관점으로 북극곰을 보자면, 요나와 타미는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북극곰과 마주하였습니다. 영화의 원작인 만화 ‘설국열차’의 후속편에 따르면 요나와 타미는 북극에서 살아남는 것으로 나오지만, 영화의 마지막 상황만을 놓고 본다면 요나와 타미가 븍극곰이 살아 있는 환경에서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꼬리 칸의 삶에 순응하지 않고 탈출한 둘의 결정은 최악의 결정이며, 기차의 꼬리 칸에서 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는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4. 총평
설국열차는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를 원작으로 201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입니다.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송강호 등 유명 배우들이 등장했고 93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흥행에도 성공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대 사회의 갈등과 부조리들을 열차라는 제한적인 공간을 통해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알맹이 없이 흥미와 즐거움만을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들에 대해 싫증을 느끼시는 분들이라면, 다양한 관점으로 영화를 해석해가며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댓글